0. 블로그에는 내 지극히 개인적 감정이 담긴, 유치하기 짝이 없고 혼자 모든 고뇌를 지닌듯한 그런류의 글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블로그라는 공간의 특징이기도 하고, 감성보단 이성으로 머리를 채우려는 내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은 내 추억이 담긴 그런 글을 써보려고 한다. 특별한 날이니까..
1.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라디오를 자주 듣는 사람이라면 아마 많이 들을것이고, 잘 듣지 않는 사람이라면 잘 모를 그런 방송. 수많은 라디오 방송중 하나일 뿐이지만, 오늘부로 떠나 보내는 이 프로그램에 많은 이들이 아쉬워 하는것은 이 방송이 가진 어떤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2. 내게 라디오라는 매체는 단순한 음악감상이나 게스트들의 농담따먹기에 낄낄거리는, 그런 종류의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내가 처음 라디오를 접했을때는 13살,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였다. 아마도 그 전까지는 라디오를 들을만한 기기가 딱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실에 있는 오디오는 아무래도 혼자 밤에 라디오를 듣기엔 부적격했으니까. 하지만 워크맨이라는것을 구입하고 밤에 우연한 기회에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렇게 많은것이 바뀌었다.
3. 처음 들었던 방송은 오후 10시 89.1 KBS FM음악도시. 이주노가 진행했었고, 마침 내가 처음 들었을 때는 이주노가 사고를 당해 양현석이 대신 진행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잠자리에 들면서 귀에 이어폰을 꽂았을때 들려왔던 가요들 (지금 쓰면서 보니 그땐 참 일찍 잤구나 싶다..). 라디오가 나에게 단순한 라디오가 아닌 이유는, 라디오를 접하면서 내가 본격적으로 음악에 입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같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가수들의 음반을 가끔씩 구입했을 뿐이고, 소위 주류음악을 빼고는 지식이 전무했다고 할 수 있었지만 라디오를 듣기시작하면서 라디오 방송은 나에게 음악을 접할 수 있게 한 창구가 되어주었다.
4. 그렇게 라디오를 처음 만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취침시간이 늦어지면서 주로 듣는 라디오 방송의 시간대도 점점 늦춰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접했던, 사춘기 소년이었던 나에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방송이 바로 유희열의 'FM 음악도시'. '유희열' 이름 석자보다는, Toy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이 더 친숙했었지만, 사실 토이의 큰 팬은 아니었다. 당시 4집이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즈음에 자주 나왔던 '여전히 아름다운지'는 내 미숙한 음악적 감성으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것 같다 (그땐 Backstreet Boys같은 미국 틴팝에 열중하고 있을때였으니..).
5. 유희열, 그는 나에게 음악보다 라디오로 먼저 다가왔다. 그의 시니컬한 감성과 따뜻한 감성은 한데 얽혀서 굉장한 시너지를 냈으며,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책상에서 입을 틀어막고 웃어댔고 동시에 멍한 눈으로 창 밖 하늘을 쳐다보게 해 주었다. 그의 방대한 음악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여느 음악방송과는 다른 선곡들은 나의 음악세계를 넓혀주었고 그의 하루 하루의 방송은 나에게 하루 하루의 낙이 되었다. 음악도시를 들으면서 나는 음반을 사 모으게 되었고 음악에 조금씩 눈을 뜰 수 있었다.
6. 음악도시 시절의 유희열은 요즘의 유희열과는 사뭇 달랐다. 총각이었고, 젋었던 그는 마치 '커플에 대항하는 솔로들의 기수'와도 같았다. 가끔 커플들의 사연을 읽을때면 그의 가시돋힌 혀는 독설을 뿜어댔으며 당시 커플/솔로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던 나조차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물론 그랬던 그가 결혼을 한다고 할땐,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지만 말이다.
티비를 잘 보지 않는 나이지만, 티비 예능계에 거의 군림하고 있다시피하는 방송인 유재석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리액션'과 '친화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장점을 유희열은 모두 온전히 갖추었다: 다른점이 있다면 유재석은 매우 바른 이미지 이지만, 유희열은 심야방송에 너무나 어울리게도 '변태적'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야한 이야기를 꺼내고 혼자 어쩔줄 모르게 부끄러워하면서 큭큭 웃어대는, 그는 어둡고 외로운 밤에 너무나 어울리는, 그리고 아마 방송계에 유일한 디제이였다.
7. 그랬던 음악도시도 2001년에 끝이 났다. 마지막 방송을 듣진 못했지만, 디제이가 이소라로 교체된 후에는 막연히 이소라를 싫어했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그는 2002년에 '올댓뮤직'으로 돌아왔지만 단 1시간분량의 방송이었고 그의 특유의 감성과 스토리텔링을 맛보기엔 너무나 짧은 방송이었다. 그렇게 그는 잊혀져 갔다.
8. 다시 그를 만난건 2008년이다. 아마 내 라디오 청취도 음악도시가 끝남으로 인해서 잠시나마 멈췄었던 것 같다. 그만큼 유희열의 빈자리는 다른 방송으로 매울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2008년, 너무 힘들었던 그 시절,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왔을때 그 적막이 소름끼치게 싫어서 집에 있는 모든 시간동안 그냥 라디오를 켜놓곤 했다. 아무 소리로라도 공간을 채워두고 싶었다. 그래, 아마 외로움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라디오 천국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연히.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외로움과 쓸쓸함은 라디오 천국의, 그리고 '희열님'의 담당이었다.
9. 그랬던 그가, 그랬던 라디오 천국이 오늘, 그리고 내일로 문을 닫는다. 외국에 나와있던 내가 가장 많은 한국말을 들을수 있었던 때가 라디오 천국을 들을때였다. 라디오를 들으며 한국을, 한국에서의 내 추억을 꺼낼 수 있었고 아팠던 기억을 다시 꺼내어 조금이나마 쓰다듬을 수 있었다. 거창하게 들릴지도, 오버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랬다.
이미지 출처: www.10asia.co.kr
10. 세번째 이별, 하지만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돌아올 지도,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든 이별이 그렇듯, 한동안 아프다가 다시 언제 그랬냐는듯 잊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난 이별을 잊는 성격은 아니다. 가슴속에 담아두고 한참을 묵힐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끔씩 아픈 기억을 들춰내면서 더 아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내 이별들이 그러했듯 후회는 하지 않을 일이다. 그렇게 라디오 천국을, 유희열을, 그리고 3년 반동안의 내 추억을 모두 같이 모아서 떠나 보낸다. 그의 노래처럼, 뜨겁게 안녕.